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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붉은돼지 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6. 28.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를 보았습니다.

20세기 초반, 아마 세계1차대전이 끝나고 2차대전이 발발하기 전 그 사이의 시대라고 생각됩니다. 그 시기의 이탈리아 아드리아해에서 현상금 사냥꾼 일을 하는 비행기 조종사가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이 조종사가 돼지라는 것이죠.

생각보다 시간적/공간적 배경이 구체적인 영화입니다. 다만 주인공이 전혀 사실적이지 않은 돼지라는 것이 약간 생소한 영화로 보여집니다. 이 돼지는 그 당시 남자들이 가장 숭배하는 가치였던 국가나 민족을 위해서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비행을 합니다. 1차대전에서 전우들을 잃고 파시즘에 빠진 이탈리아에 혐오를 느낀 나머지 이탈리아군 조종사 포르코는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된 후 현상금 사냥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마 그의 비행정이 붉은 색이라 붉은 돼지인듯 합니다>

하지만 그가 돼지가 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중간에 회상씬에서 1차대전 당시 적기에 쫓겨 빈사상태에 빠졌을 때 포르코의 꿈에서 모든 비행기들이 은하수처럼 무리지어 비행하는데 자신의 비행기만 거기에 합류하지 못하는 광경을 봅니다. 이 회상씬을 통해 포르코가 얼마나 전쟁을 혐오하고 죽은 전우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 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돼지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근데 왜 하필 돼지였을까요? 동물들 중에서도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돼지를 고른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는 포르코의 대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었는데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인 편이 나아.", 그리고 애국채권을 사라는 은행원의 권유에, "그딴 건 인간들끼리 많이 하시오."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이러한 대사를 통해 자신이 이탈리아인보다 돼지를 택함으로써 파시즘에 반대하고 파시즘에 빠진 인간들은 돼지만도 못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오가 개구리왕자 이야기를 떠올려 포르코에게 키스를 시도하는 장면>

포르코에게는 두 명의 여자가 있는데 포르코의 친구들이었던 파일럿들과 3번 결혼한 친구 지나와 포르코의 비행정을 고쳐준 소녀 피오입니다. 한 때 지켜주고 싶었던 여자와 지켜줘야 할 미래의 여자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합니다. 비행정 결투 중 이탈리아군의 내습을 받을 위험에 처하자 포르코는 지나에게 피오를 맡기고 다른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공군의 미끼가 됩니다. 헤어질 때 피오가 포르코에게 키스를 하는데, 그 이후 포르코는 얼굴이 나오지 않는데, 피오의 키스를 받고 포르코의 마법이 풀려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유추를 하게끔 합니다. 전쟁을 통해 많은 친구들을 잃고 그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돼지가 되었고 자신의 능력으로 많은 이들을 구한다는 행동으로 자신의 죄업을 씻었다는 점에서 마법이 풀렸다는 것을 상상하게 되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이 영화가 20세기 초반의 유럽 비행활극일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비행정 애니메이션의 진수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쟁을 겪은 한 인간의 속죄를 위한 영화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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