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하나케 감독의 영화인 만큼, 가볍지 않은 영화일거라 예상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더 무거운 영화였다.
영화는 무서울 정도로 노부부 안나와 조르주 그리고 그들의 집에만 집중한다. 영화의 초반에 부부가 음악회에 다녀온 것 이외에 영화의 배경은 줄곧 안나와 조르주의 집이다.
손 때가 묻었지만 그 자체로의 멋과 향이 있는 가구들과 소품들은 그들이 함께한 시간과 같이 겪어온 일들만큼 이나 많은 이야기와 추억이 깃들어 있음을 쉬이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영화의 무서울 정도로 일관적인 배경은 안나와 조르주의 대화와 사건들이 언제나 그들만의 시간과 의미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관객에게 상기시키는 듯 하다. 의도적이라고 느껴지는 몇 번의 시간적 단절 역시, 관객으로 하여금 그 사이에 안나와 조르주 사이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조르주가 안나를 죽이는 비참한 결말 역시 이러한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물론 영화를 처음부터 본 사람이라면 어떠한 판단과 단정도 쉽게 내리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떠한 판단도 감히 내릴 수 없고 조르주의 심정을 이해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다만 초반에 안나와 조르주가 같이 식사하던 장면에서의 대화가 일말의 단서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아침 식사에서 조르주는 안나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고 안나는 ‘내가 생각하는 당신의 이미지가 변할까 무섭다’고 말한다. 자신의 이미지가 어떠냐 묻는 조르주에게 안나는 ‘당신은 고약하지만(monstrueux) 참 착해’ 라고 대답한다.
그는 누구보다 안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안나의 성격을 볼 때 그녀가 병에 걸리기 전부터 늙어가는 것에 대한 회환과 삶에 대한 얼마간의 피로감과 염증이 있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고, 병에 걸린 후의 몇 번의 대사(“왜 사나 싶어” ,”인생이 너무나 길다”)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조르주는 참 착하기에, 누구보다 안나를 사랑하고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고 또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고약’해진 것이라 한다면 지나친 추측일까
나는 이 영화의 주제가 제목 그 자체,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결말 역시 그 맥락 안에서 이해한다.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아" 라는 대사를 생각해 볼 때, 마지막에 조르주가 쓰는 편지는 딸에게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거나 고백하는 편지가 아니라 안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예를 들어, '당신이 좋아하던 원피스를 입혔고, 좋아하던 꽃을 사서 뿌렸어. 문은 테이프로 잘 막았으니 걱정마' 등의- 또 하나의 이야기라 생각한다.
살아가며 두고두고 생각 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무게가 매번 더해질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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