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백을 하면 (2012, 한국)
한국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닌데, 제목에 끌려 개봉 전부터 기다리던 영화였다. 결국 상영시간이 맞지 않아 극장에서 보지는 못하고 다운받아서 보았는데, 극장에서 보았더라도 다운 받았을 그런 영화다.
충격적인 사건도, 반전 있는 스토리도 없지만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최대로 힘을 빼서 관객으로 하여금 뻔한 스토리도 뻔하게 느껴지지 않게 하는 매력이 있는 영화이다.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미혼 남녀가 만났고 엔딩 즈음에는 연애를 시작한다. 정도
주인공들은 절대 ‘어린’ 미혼 남녀는 아니다. 세파에 적당히 치이며 사는 ‘비주류’ 영화감독과 맥빠지고 구질한 현실연애에서 이제 막 벗어난 간호사의 만남
서울에 사는 영화감독 인성은 속초가 좋아 주말마다 강릉에 간다. 강릉에 가면 바다도 있고, 음식도 맛있고, 사람도 별로 없고….
반면 강릉에 사는 간호사 유정은 서울이 좋아 주말마다 서울에 간다. 서울에 가서 강릉에서는 볼 수 없는 독립영화들도 보고, 뮤지컬도 보고..
거의 매 주마다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어느 곳으로 ‘도피’하는 그 둘은, 숙소 문제로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서로를 만나 각자의 집을 주말마다 빌려쓰기로 한다.
영화의 묘미는 ‘연애’가 ‘집 바꿔 살기’와 절묘하게 대응되는 지점들이다.
주말마다 집을 바꿔 사는 것과 연애 모두 일종의 계약이기에, 체결에 앞서 몇 가지 조건들의 교환이 이루어 진다.
인성과 유정이 카페 주인 앞에서 ‘사용해도 되는 것’과 ‘사용해서도, 건드리지도 말아야 할 것’ ‘반드시 지켜줄 사항’들을 정하는 모습은 흡사 연애 초기 혹은 직전에 서로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는 연인의 모습 같다.
하지만 계약 위반 시의 벌금을 50만원씩이나 정하고 약속한 조건들을 따박따박 이행하던 모습은 곧 사라지고 만다.
슬금슬금 약속을 어기고 하지 말자던 짓을 귀엽게 해 나가며 서로의 취향과 성격을 조금씩 알아가던 둘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경계를 침범해야만 서로의 진짜 모습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소 이외에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모델하우스가 아닌 이상 먼지와 묵은 때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집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남에게 (특히 잘 보이고 싶은 이성- 잠재적 연애 상대-에게) 나의 집을 내어 준다는 것은 화장실의 물때를, 부엌의 기름때를, 잘 정리되지 않은 옷장을, 냄새 나는 냉장고를, 정신 사나울 정도로 장르적 일관성이 부족한 또는 내용적으로 편협한 책꽂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나의 구질구질한 면면이 모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가 멋지고 반질반질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데서 가끔씩 우리는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너 또한 그런 존재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사실 나를 향한 구원의 손길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라는 말 안에 비관적인 자조를 지우고 ‘훈내’를 새기게 하는 영화.
이동진 기자가 ‘스크린에서 객석으로 불어오는 훈풍’ 이라고 한줄평을 남긴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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