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더더기없고 소박한 글에, 이런 저런 형용사를 늘어놓으며 찬사하는 것이 오히려 죄송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수필들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을 어떻게 넘치지 않으면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내가 아끼는 사람이라면 생일이든 졸업식이든 이유를 만들어 직접 선물해주련만.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증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짧은 수필 몇 편을 보았을 것이고 '피천득'이라는 이름 또한 상식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연>을 아직 전문 모르는 분이 있다면, 중고 서점에서 오천 원에 책을 사들고 지하철 출근할 때 한 편씩 읽어보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학창 시절에 국어교과서에서 본 듯 가물가물한 유명한 구절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할거에요.
봄이 오면 비둘기 목털에 윤이 나고 봄이 오면 젊은이는 가난을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스물여섯 된 무급조교는 약혼을 한다. 종달새는 조금 먹고도 창공을 솟아오르리니, 모두들 햇빛 속에 고생을 잊어보자. 말아두었던 화폭을 펴 나가듯이 하루하루가 봄을 전개시키려는 이 때.
다른 리뷰를 조금 보다보니, 전쟁터같은 세상살이에 이 책을 읽고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는 소감이 많았습니다. 현대 사회의 속도가 따라갈 수 없이 빠르고 비인간적이기 때문이라고 요즘탓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보면, 사는 일이 팍팍한 게 옛날이라고 딱히 나았던 것도 아니지 싶습니다. 결정같이 순수한 그의 글을 읽을 때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가, 중간중간 도산이라던가 춘원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나타내는 부분이 나올 때 아, 이 당시가 '진짜' 전쟁터였던 시대였지 참, 하고 퍼뜩 깨닫곤 했답니다. 경쟁 사회라던가 시대의 상대성을 논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습니다만, 요지는 피천득 선생님의 글은 시대를 떠나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한 진솔한 인간의 존재 자체에 충격을 받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책에 한 시인의 죽음을 기리는 글로 "그의 생애가 우리 문화에 얼마나 기여하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시대에 그렇게 순결한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축복이라 하겠다" 는 문장이 있었는데, 저는 이 문구야말로 후대 사람들이 선생님 자신을 기억하는데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전에 나오는 수필의 정의는 "어떤 형식의 제약을 받지 않고 개인적인 서정이나 사색과 성찰을 산문으로 표현한 문학"으로, "그저 담수(淡水)와 같은 심정으로 바라본 인생이나 자연을 자유로운 형식에 담은 산문(한국학중앙연구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수필(隨筆)'이니 그야말로 붓 가는 데로 따라 쓴 문학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수필은 글쓴이와 동체임을 특징으로 합니다. <인연>의 첫머리에 나오는 수필에 대한 글도, 이것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중년 고개가 넘어가는 사람이 써야하는 글임을 말해두고 있습니다. 피천득 선생님의 옥같은 수필들은 '담수(淡水)같은 심정'이라는 사전의 정의와 어쩌면 그리 일치하는지요.
선생님이 생전에 사랑했던 자신의 호는 금아(琴兒)-거문고를 타고 노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일생을 아이와 같은 맑은 눈으로 보는 시선이 오히려 비현실성을 느끼게 할 정도입니다. 사실 우리가 청학동에 들어가 시 짓고 술따르며 사는 인생이 아니라면, 남들처럼 살기위해 버둥거리는 동안 얼마나 경쟁도 해야하고 열등감도 느껴야 하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인연>을 읽는 동안 잠깐이라도 닦아낼 수 있으면 혹 반나절도 안 되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고 해도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모든 장이 진주 같은 미문이었습니다. 화려한 장식없이 은은하게 산뜻한 중에 감동이 옵니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에 이르러서는 피천득 선생님과 서영이 같이, 세월을 맞는 아빠와 이미 커버린 내가 겹쳐 생각나 마음이 울렁입니다. 이미 3월이 되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아빠 팔짱을 끼고 걷기에는 조금 늦었네요. 대신 꽃 피는 서울 봄날에 같이 나가자고 말해야겠어요.
고운 얼굴을 욕망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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