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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운 생활

이유선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12.

대학 시절 소위 ‘나는누구 여긴어디’의 고뇌기를 맞아, 도서관 철학코너를 한번이라도 기웃거려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입니다. 그러다 혹여 실제 전공수업을 패기롭게 신청이라도 했다가, 머지않아 강의실에 난무하는 철학용어에 기가 눌려 후회했다는 친구도 한두 명씩 꼭 있게 마련이었지요. 철학.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어떤 이들은 어휴, 그런 뜬구름 잡는 얘기 딱 질색이라며 찌푸리겠고 또 어떤 이들은 ‘니체가 말하길’로 시작하여 자신의 교양을 조금이라도 뽐내보고 싶어 반색하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학이 무언가 중요한 것 같긴 하고 어쩌면 향후 배워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가지고 있으나, 사실은 내 현실 속 코앞가림을 하기에도 바쁜 실정이라 그런 알쏭달쏭한 이야기는 일단 나와 상관없는 엘리트 분야라고 넘겨버렸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철학과 교수님이 직접 나섰습니다. 소설 <죄와 벌>을 읽고 삶과 진리를 배우고 싶어 철학을 공부해보았더니 “...여기에는 라스콜리니프가 겪고 있는 인생의 고민, 창녀인 소냐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와 고통 등등은 모두 사라진 채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란 무엇인가에 대한 차가운 정의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실망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죠. 저자는 대중에서 크게 벗어난 분석철학에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에게 살아가는데 나름의 실마리를 전해준 것은 문학의 일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문학과 철학의 대화’라는 소제목을 내걸고, 일상을 통해 들여다 본 철학 개념의 설명과 그 개념에 관련되는 문학 작품을 1:1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각 장마다 소개되는 문학책 중 많은 부분이 한국 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어려운 외국 철학가들의 개념을 자신이 멋모르고 읽었던 국내 소설에 적용시켜 재조명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췌문) 


-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은 일생동안 성장통을 앓는다고 할 수 있다. 삶을 중단할 것이 아니라면 성장의 고통은 감수해야 할 숙명이다(중략) 어쩌다 보게 되는 멜로 영화들의 결말은 대체로 해피엔딩이다. 주인공들은 티격태격하면서 헤어질 듯 말 듯하다가, 또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결국에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영화는 끝난다. 정신나간 감독이 아니라면, 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각종 세금과 할부금에 허덕이고, 아이들의 사교육비와 집값으로 고통받으며, 친구의 출세에 좌절하거나 사회적인 실패로 절망하고, 노부모의 병간호에 지쳐가는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갈 리 없다.


p49. 삶은 계속된다. 


- 그런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픈’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철학자들의 그런 꿈 같은 이야기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인간이 보편적인 인류애는커녕 사촌을 사랑하는 경지에도 이르지 못하는 이유를 단지 그의 도덕적인 수양이 부족한 데에서 찾는 것은 많은 사람을 죄의식에 빠뜨리는 좋지 못한 방법이다. 철학자 가운데서도 보편적인 인류애니 도덕성이니 하는 것을 허구적인 구호로 간주한 철학자들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니체와 마르크스이다.


p43 인간의 유한성 





- 까뮈는 <시지프의 신화>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 이것이 곧 철학의 근본 문제에 대답하는 것이다.’


강단 철학자들은 말할 것이다. 까뮈는 철학자가 아니며 인간의 자살은 문학적 소재는 될 수 있을지언정, 논증적인 탐구의 대상은 아니라고 그러나 명료하고 논증적인 문제는 오히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의 물음이 해명되지 않는 이상 ‘장난에 불과하다’는 까뮈의 생각에 나는 동조하고 싶다. 내게는 이처럼 엄숙하고 진지한 물음에 한 대답을 회피하려 그 어떤 철학도 공허하게 여겨진다.


p233 자살하는 인간




각 장은 모두 세 개의 마디로 이루어집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일상 얘기로 재미를 돋우고 그 다음 두 마디에서 이와 관련된 철학과 문학책을 들어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최대한 쉽게 다가가려는 것이 느껴지지만, 뒤로 갈수록 철학적 개념의 난이도가 약간씩 올라가는 듯도 느껴집니다. 저자가 학문적으로 철학자 로티(Richard Rorty)의 철학을 잇고 있기 때문에 특히 뒷부분에서 로티 철학을 설명할 때 좀 더 많은 양을 할애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잇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양서이지만 한없이 마음 가볍게 읽을 수준은 아니고, 한 장 한 장의 개념을 음미하면서 정독한다면 책이 끝날 즈음에는 상당한 자기 성찰과 정신적 포만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책의 제목인 ‘아이러니스트’와 ‘사적인 진리’는 무엇인지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 답을 찾는 것도 책을 100% 소화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활동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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