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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운 생활

김 훈 자전거 여행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3.

통계에 따르면 나이 들어 후회하는 가장 큰 안타까움이 바로 여행이라고 합니다. 젊을 땐 돈이 없어 못하고 한창 일할 땐 시간이 없고 이제 시간이 생길 즈음엔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선뜻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찾지요.



소설가 김 훈은 이런 편견을 뒤로 하고 50이 넘은 나이에 자전거 하나로 전국의 산과 강과 바다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98년 가을부터 2000년 봄까지, 풍륜(風輪)이라는 이름의 애마를 타고 기록한 풍경들을 <자전거 여행>이라는 에세이집으로 묶어내었습니다.

  



선암사 뒷산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서 오글오글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 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꿈을 꾸는 것처럼 보인다.                                       


p22 꽃피는 해안선, 여수 돌산도 향일암

 


사실 이 에세이집의 최대 묘미는 저자가 자전거 한 대로 전국을 누볐다는 사실이나 거기에서 나오는 스토리 자체보다도, 한국어라는 언어와 그에 맞는 향토 소재를 극대로 활용하는 저자의 언어력에 있다고 보입니다. 마치 한국어라는 말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말이죠. 누구나 암자 뒷산의 산수유를 바라보지만 아무나 그것의 ‘존재로서의 중량감’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산수유가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꿈을 꾸는 것처럼 보인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단물이 나오는 문장. 그래서 당장이라도 노트에 옮겨 적어놓고 싶을 만한 문장으로 에세이집은 꽉 차 있었습니다. 


사실 말로 그림을 그린다는 개념은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여행 에세이 <여행의 기술>에서 존 러스킨의 말을 빌려 소개한 것이기도 합니다(p291.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아름다운 풍경을 대할 때 예술가들처럼 후대에 길이 남길 명작을 그리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언어력을 탓하며 한두 마디의 감탄을 뱉거나, 또는 사진을 찍어 물리적으로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기 마련입니다. 러스킨은 그 대신 아름다움을 좀 더 개인적으로 오래 소유하는 방법으로 ‘말 그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느 날 런던의 가을 구름이 예뻤다, 라고 하고 마는 대신에, 11월 3일: 자줏빛 새벽, 홍조, 섬세하다. 쭉 늘어선 회색 구름, 6시인데 빽빽하다. 이윽고 그 사이로 빛을 등진 자주색 구름이 나타난다... 하는 식입니다. 여유로운 여행자라면 한번쯤 시도해봄직하죠? 


<자전거 여행>과 <여행의 기술>을 같이 읽게 된 건 우연이었지만, 소설가 김 훈은 우리말로 그리는 우리 땅의 그림을 그야말로 정감 있게 그리는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우리나라의 절경은 깎아지른 로키 산맥이나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은 압도적인 위엄에 있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 숲, 뒷산, 된장국과 냉이 같은 소재가 그 대신이죠. 가끔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의 관광지처럼 왜 거대한 건축물이, 초월적으로 위압적인 자연 경관이 없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전거 여행>은 우리의 미는 그보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껴서 살아가는 일상,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와중에 그야말로 사람과 자연이 ‘살아지는’ 일상 속에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같은 한두 개의 건물이 고상하기는 하지만, 사실 진짜 삶의 질이 높다는 것은 선선한 주말 가족과 걸어갈 수 있는 뒷동네 작은 공연장이 많은 쪽이라는 것. 로키 산맥보다도 저녁 먹은 후 천천히 마실갈 수 있는 정겨운 숲이 한국인이 느끼는 우리의 미(美)가 아닐까요.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프롤로그


저자가 자전거로 여행하는 까닭은 자동차로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자전거는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글의 풍경은 꼭 자전거가 움직이는 속도만큼 지나가고 있습니다. 심각하지 않은 에세이집이니만큼 머리를 천천히 움직이고 싶을 때에 한 권 집어들어보시길. 챕터마다 소개된 장소들을 여행리스트에 올려놓고 나중에 직접 들러보는 것도 좋겠지요. 저자는 50이 넘어 자전거를 탔는데. 핑곗거리를 찾다가는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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