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관람기-
1. 박물관의 구조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의 구조는 특별하다. 건물의 구조를 최대로 활용하려는 듯 바깥 복도와 계단 옆의 벽 등을 모두 전시물로 채웠다. 물론 그러다보니 장소가 매우 협소하여 단체로 관람을 왔을 때는 불편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참 알차게 박물관을 꾸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관람을 할 때는 무료로 제공되는 오디오 설명을 들으며 움직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각 전시물 옆에는 숫자로 번호가 붙어져있는데 그 번호대로 설명을 들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관람하는 코스는 지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1층으로 내려오는 식이다. 보통의 박물관 관람 코스(1층에서 2층으로 차례대로 올라가는 식)와 달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지하 1층에서는 제일 먼저 여정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폭력과 차별의 벽을 뚫은 나비의 영상을 접한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본 후에는 바깥과 연결되어 있는 통로로 향했는데, 이 때 통로에서는 당시 전쟁의 느낌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전쟁의 포성 소리를 들려줬다. 마침 내가 갔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그 분위기가 더 숙연하게 느껴졌다. 한편 통로 양 옆에는 각각 소녀들이 걸어가는 그림과 현재 위안부 할머니들의 얼굴 현상을 본 뜬 부조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렇게 통로를 지나쳐 지하로 내려가면 그녀의 일생이라는 제목의 지하 전시관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티켓을 구입할 때 인연을 맺었던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터뷰 영상과 소녀의 사진들과 현재의 사진들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하 전시관을 지나쳐 계단을 오를 땐 피해자들의 고통의 목소리가 담긴 문구를 벽에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점은 밝은 공간이 가까워질수록 희망찬 문구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전시물의 위치를 구성할 때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큰 맥락의 서사적 구조까지 고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에서는 주로 자료 전시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크게 역사관, 운동사관, 생애관, 추모관 등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이 전시물들을 통해 일본군이 위안부를 어떻게 운영했는지, 그리고 현재 일본 정부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또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해 여성들이 어떻게 운동을 꾸려왔는지 그 기록을 찬찬히 살펴 볼 수 있게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더욱 생생하게 위안부 문제를 접할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이나 인터뷰 영상 등의 장치들을 마련해 놓았다. 곳곳에는 기부를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지만 기부자의 벽이나 추모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운동을 위한 기금을 마련 할 수 있도록 배치해 놓았는데, 이것 또한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1층으로 다시 내려오면 위안부 문제에서 더 나아가 세계 여성 인권에 대한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쟁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세계 여성들의 이야기들이 다양한 사례와 사진들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사례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끔찍하고 마음 아팠다. 더불어 우리가 앞으로 이와 같은 참사를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더욱더 여성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전시물의 다양성
솔직히 이 박물관을 오기 전에는 별 기대를 안했다. 단순하게 위안부들이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기껏해야 증언 영상 같은 것만 마련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시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했다. 예를 들면, 단순한 증언 영상이 아닌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위안부 문제가 발생 했던 당시의 전쟁 상황과 신문 자료들을 통해 당시의 상황들이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또한 위안소가 어땠는지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으로 구조를 파악하게 하고, 위안소에 들어갈 때 쓰인 표와 당시 일본군의 계급마다 달랐던 위안소에 지불한 돈의 가격을 제시해 비인간적인 일본군의 만행을 확실히 인식하는데 도움이 됐다. 또한 전쟁이 끝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용기 내어 위안부에 대한 증언을 했었던 기록문, 판결문 등을 함께 전시해 당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증언을 받을 때 사용했던 전화기나 녹음기 같이 소소한 것 까지도 함께 전시함으로써 전시물의 디테일함을 더했다. 세계 여성 인권에 대한 전시물들도 마찬가지다. 피해 받은 여성들의 여러 사례들을 함께 전시해 관람하는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했다. 물론 위안부에 대한 전시보다 덜 준비되어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문제의식을 환기 시키는 데는 충분했다.
이처럼 전시물들이 다양하게 되면 박물관이 전해주고자 하는 문제의식이라든가 이슈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해서 접하게 되고, 단순히 시간만 때우는 게 아니라 ‘생각할 거리’들을 얻게 된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관람객들이 생각할 거리들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느꼈다.
3. 내러티브
앞서 박물관의 구조에 대해 서술할 때도 언급했지만 이 박물관에는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 그리고 현재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이를 확대 시켜 아직도 전쟁으로 인해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는 세계 여성들의 이야기를 진술한다. 단순히 전시물들을 이것저것 배치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도통 이 박물관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본 박물관은 이 내러티브 구조를 굉장히 잘 활용했다. 계단 옆 벽에 적힌 메시지를 절규의 목소리에서 희망의 목소리로 바뀌게 한 것이나 박물관의 BGM을 2층에서는 운동권 노래(위안부 할머니들의 운동), 1층은 'No woman no cry(세계 여성 인권 운동)'을 틀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은 전시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메시지를 명확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4. 소녀를 기억하자
그동안의 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사과를 해야 할 문제다라고만 생각하고 그 이상으로 더 깊게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전쟁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박물관 탐방을 통해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됐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간 소녀들, 고통 받은 소녀들은 우리나라의 국민이고 나와 같은 여성이다. 따라서 나와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또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인권 유린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정부에 대해 분노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사태의 심각성을 되도록 많은 이들이 각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 시키고 함께 관심을 가져야 대항 할 수 있는 힘이 더 커질 수 있다. 위안부 팔찌 판매나 서명 운동 같은 것도 관심을 독려하는 데 많은 힘을 실을 수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본 박물관을 홍보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직접 사건의 심각성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면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외로운 소녀를 기억하고 감싸 안아주자.
지금까지 잠시후도착의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관람기 포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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