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불안요소
제 1장 세 가지 불안
찰스 테일러는 현대사회가 도래하면서 현대인들이 마주하게 되는 상실감과 몰락의 느낌을 주목하고 있다. 경제,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사회인데 왜 우리는 불안함을 느껴야하는지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가 뽑은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개인주의’ 때문이다. 과거 사람들은 자신을 거대한 우주적 질서 중 한 구성요인으로 인식했다. 때문에 지상의 다른 피조물들과 서로 ‘연결 고리’가 있다고 인식했고 이는 사람들이 세계와 사회적 행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예로 토테미즘이나 애니미즘과 같이 인간 외에 것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가 도래하면서 개인주의가 시작됐고 더 이상 자신을 제외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주지 않게 됐다. 그리고 기존에 폭넓게 사회적, 우주적 의미를 부여하던 행위를 상실하게 되면서 보다 높은 삶에 대한 ‘목적의식’을 잃게 됐다. 찰스 테일러는 이러한 목적 설정 상실로 인해 자기 삶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고 마음의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을 초래했다고 보았다. 즉, 우리의 삶은 갈수록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타인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자기도취가 만연하는 사회로 변모한 것이다.
현대사회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두 번째 요인은 ‘도구적 이성의 지배’ 때문이다. 도구적 이성이란, 주어진 목적을 위해 가장 경제적으로 수단을 응용하는 합리성을 뜻한다. 전통적인 규제의 틀이 사라지면서 도구적 이성의 범위는 방대해졌다. 그리고 오로지 비용과 소득을 최대한 줄이는 효용성에만 주목하는 현상을 낳았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지향하고 있는 ‘경제성장’에서도 볼 수 있다. 더 많은 건물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갯벌을 없애고, 고가의 건물을 짓기 위해 엄연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달동네들을 무참히 허물어버리는 사례들은 현대사회가 효용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더 소중한 가치들을 잃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경제적인 부분에서 뿐만 아니라 의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의학 기술에만 주목함으로써 정작 치료해야 할 인간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사태들이 만연하고 있다. 의학발전을 이유로 인체를 함부로 실험 대상으로 삼게 된다는 소재는 이미 많은 영화에서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이처럼 도구적 이성의 지배가 팽창해갈수록 사회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각자 개인들은 위험에 빠지게 됐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찰스 테일러는 먼저 도구적 이성을 지향하려 하는 사회생활의 강력한 장치들의 폭력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의 궁극적인 목표 설정을 다시 함으로써 제도적인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사회의 마지막 불안 요인은 개인주의와 도구적 이성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정치영역’ 때문이다. 자기 마음속에만 갇혀 있는 개인들은 도구적 이성이 만연하고 있는 사회 속에 처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현대판 독재’를 맞이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그리고 이런 독재 정부는 온화하고 가족주의적인 권위를 가지며 심지어 민주주의적인 형식을 띄고 있을 것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개인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더 나아가 국가의 정치에 대한 무기력함을 느낌으로써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모두 정부에게 맡겨버리게 된다. 즉,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다가 오히려 정치적 자유를 잃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찰스 테일러는 이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자결권이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세 가지 불안 요인을 안고 있는데, 이러한 불안 요인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방안을 찾는데 있어 단순히 장점과 단점들에 대한 산술적 최대 평준화만 구하기보다 적극적인 대처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제 2장 아직까지 명료하게 제시되지 못한 논쟁점
2장에서는 개인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과 삶의 의미의 상실에 대한 논의를 자세히 하고 있다. 즉, 앞서 말한 현대사회의 세 가지 불안 요소 중에서 첫 번째 요소에 주목한 것인데, 이 문제가 현실에서는 어떤 형태로 제기되고 있는지 서술하고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앨런 블룸은 『미국적인 마음의 폐쇄』라는 책으로 젊은이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그는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이 ‘상대주의적인 무관심주의’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상대주의적인 무관심주의의 만연은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상대주의적인 무관심주의는 모두 각자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상호 존중하겠다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혹자는 이를 자기실현의 개인주의라고도 부르는데, 오직 자신의 종교적, 정치적, 역사적 집중만 함으로써 자기 외에 것들에 대해선 무관심해진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블룸과 같은 저술가들은 이런 현상이 정치 분야에도 적용됨으로써 무서운 정치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주의는 ‘자기실현’을 목표로 하고 ‘자기 진실성’이라는 개념을 도덕적 이상으로 삼고 있다. 자기 진실성이란 세속적인 성공 실패와 같은 외재적인 가치 기준에 끌려 다니지 말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진실해야 한다는 이상을 말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자기 진실성가 갖고 있는 본래의 도덕적 이상을 제대로 펼칠 수 없게 하고 있다. 그 배경을 예로 들면, 첫 번째로 상호 무관심적인 개인주의를 들 수 있다.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문화로 인해 사회에 던져진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만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삶의 방향이 각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현대 사회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이상이 불명료해지게 돼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도덕적 주관주의’개념과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다. 도덕적 주관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개인의 이성으로부터 자기 진실성의 이상이 실현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주관주의적인 관점은 자신의 이상을 명확하게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어렵다는 한계점이 있다. 둘째로 현대 사회에 사회과학의 입지가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인과 관계만 논의하는 사회 과학적 설명들은 도덕적 이상에 대해서 철저히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금까지 잠시후도착의 찰스테일러 <불안한 현대사회> 요약 포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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