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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 4.

텔레비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가?

 

 

문예론과 문화론
 우리는 우리 곁에 존재하는 문화적 장르를 통해서 세상을 읽는다. 이 때, 몇몇 문화 이론가들은 문예론에서 문화론으로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문예론’이란 문화예술론을 줄인 말이다. 문예론은 주로 예술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는데, 문예작품을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는지 혹은 사회의 세계관이 얼마나 반영됐는지 주목한다. 그러다보니 자본주의와 밀접한 대중문화나 대중매체에 대해 다루는 것은 배제하게 됐다. 이를 반성하면서 ‘문화론’이 등장했다. 문화론은 자본주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 대중문화의 현실을 문화 현실로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대중문화의 형식, 내용, 감수성을 중요시 여기고 생산을 둘러싼 각각의 주체들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주목한다. 같은 맥락으로 대중문화의 주된 매체라 할 수 있는 텔레비전은 문화론적 해석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문화론으로 바라보는 텔레비전
 텔레비전을 문화론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텔레비전을 구조적으로 비판하고, 새로운 이론적·실증적 담론들을 제기함을 뜻한다. 특히 텔레비전은 자본과 깊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텔레비전의 물적 기반에 대해 자세히 다룬다. 국가는 효율적인 자본의 배치나 독점자본에게 호혜를 주는 편의성 등을 위해 정보사회, 국제화시대로 도약과 같은 혜택들을 국민에게 내세운다. 또한 국가가 방송을 소유하고 광고 제공을 빌미로 텔레비전에 대한 자본 개입을 강화하면서 겉으로는 텔레비전 사업으로 국민 경제에 기여할 수 있고,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게 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자본의 텔레비전에 대한 접근은 점차 다양해지고 상당히 정교해졌는데, 기술 발달로 인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예를 들면, 다채널 시대가 열리면서 수용자들은 자신의 채널에 대한 선택권이 넓어졌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는 고정된 특정 서사적 구조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주는 것일 뿐이다. 즉, 자본이 전달하고자 하는 보편적 메시지는 일정하다. 이로 인해 획기적인 텔레비전 수용은 지양되고 대안적 가치나 사회변화를 기획하는 아이디어는 외면당하게 됐다.


 

수용환경의 변화에 따른 비판적 거리 두기
 맥루한은 텔레비전과 영화를 두고 비교했을 때, 텔레비전은 즉석 소비가 강하기 때문에 더 높은 참여를 유발시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두 매체의 공간이 어떠한가에 대해 주목했을 때는 타당한 이야기라 할 수 없다. 극장은 사방이 어둡기 때문에 온전히 스크린에만 집중 할 수 있으며 텔레비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사운드가 웅장하다. 반면 텔레비전은 생활에 밀착되어 소리에 집중을 잘 할 수 없고 오히려 높은 참여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텔레비전의 카리스마는 영화보다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텔레비전과 수용자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좁혀지게 됐고, 사람들은 텔레비전 읽기 교육이나 미디어 교육을 통해 텔레비전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려 시도하게 됐다. 하지만 계속되는 기술의 발달로 텔레비전이 과거보다 상당히 일반화 되고, 생활화 되면서 존재의 단독성이 희미해졌기 때문에 비판적 거리 두기가 어려워졌다.

 텔레비전은 문화를 공유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텔레비전이 문화를 공유시키게 되면 수용자들을 획일화 시킬 것이라 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비평을 하게 되면 획일화가 아닌 갈등 조장에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처럼 비 일관적인 결론이 나오는 이유는 우리가 텔레비전을 바라볼 때 과학적인 인식이나 실질적 증거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바라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직 위의 두 가지만 가지고 텔레비전을 이해하고 새로운 담론들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이런 수용방법을 방해하는 그릇된 통념들을 배제시켜야한다. 그릇된 통념에는 텔레비전의 수용자들이 지나치게 수동적이라는 것과 텔레비전은 가진 자들이 통제를 위해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수용자들의 능동적 능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말이다. 또한 때로는 제작자들이 수용자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물적 기반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를 설명하지 못하는 주장이므로 옳지 않다. 이와 같이 수많은 왜곡과 오해로 인해 텔레비전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바로잡기 위해 올바른 텔레비전 비평을 시도해야 한다.

텔레비전 비평의 사회적 지위
 텔레비전 비평을 시작하기 전, 그 동안 사회에서 텔레비전 비평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파악 할 필요성이 있다. 비평은 창작물에 대해 피드백을 줄 수 있고 성찰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더 나은 제작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유용한 행위다. 하지만 사람들은 텔레비전 비평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영화비평과 비교했을 때 신비스러운 권위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비평은 영화를 관객들보다 먼저 감상한 평론가들이 관람 여부 판단에 도움을 주게 하는 역할을 하는 반면, 방송비평은 시청자들과 동시에 보고 사후에 비평하게 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영화비평에 비해 뒷북을 친다는 평을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영화 비평의 독자층보다 텔레비전 비평의 독자층이 더 광범위하기 때문에 비평의 수준이 영화 비평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공적인 자리에 가게 되면 텔레비전을 바보상자, 저질문화 생산자, 비교육적인 제도 등으로 폄하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자연스레 텔레비전에 대한 비평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 비평만이 제작의 수준, 감상의 수준, 토론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비평을 계속 진행시켜야 한다.

텔레비전 비평이란 무엇인가
 텔레비전을 비평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요소가 있다. 제일 먼저, 비평의 대상이 선정되어야 한다. 이 때, 항상 발표가 전제로 이뤄져야 하는데 자신의 글을 읽게 될 독자의 성향, 수준, 그리고 글이 발표되는 공간을 유념하여 비평해야 한다. 또한 비평문은 체계를 갖춰야 한다. 단순한 감상문 수준을 넘어서서 대상의 구성요소들을 구조화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여기에 평가를 가해야 한다. 이 때 사용하는 것이 방법론과 이론이다. 방법과 이론을 제대로 갖춰서 정확한 분석력과 독창적인 평가를 했을 때 설득력 있는 비평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비평은 정확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 과거에는 제작자들에게 훈계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평을 가했기 때문에 오히려 외면당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방향으로 목적을 정해야 한다. 현재는 주로 방송이 나온 직후 시청자들의 해석을 돕고 비판적 의식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목적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방송문화의 발전에 있다. 방송과 정부의 관계, 프로듀서와 연예인의 관계, 사회와 프로그램의 관계와 같은 복합적인 관계들을 개선시킬 수 있는 사회적 비평을 통해 방송문화의 발전을 꾀해야 한다.
 텔레비전 비평은 유형별로도 구분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텔레비전 비평을 유형 분류하게 되면 비평문들을 쉽게 이해하고 연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먼저 첫 번째 분류 기준은 ‘비평대상’이다. 비평 대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프로그램 비평, 산업비평, 법제 비평, 정책비평, 역사비평, 조직비평, 수용자 비평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두 번째 분류 기준은 ‘발표 방식’이다. 어떤 형식으로 발표를 하느냐에 따라 단평, 리뷰, 학술비평, 전문비평으로 나뉜다. 세 번째 분류 기준은 ‘비평 방식’이다. 방송 비평 전개의 초점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이론 비평, 실제 비평, 창조 비평 등으로 나뉜다. 네 번째 분류 기준은 ‘비평 기준’이다. 어떤 이론에 기대어 분석결과를 해석하는가에 따라 신화비평, 페미니즘 비평, 사회 규범 비평 등으로 나뉜다. 마지막 분류 기준은 ‘비평 주체’인데, 누가 비평을 행하는 가에 따라 저널리즘 비평, 시청자 비평, 전문가 비평, 모니터링으로 나뉜다.
 이런 식으로 비평을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좋은 사회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영향력을 끼치는 텔레비전에 대해 개선할 방도를 마련함으로써 좋은 사회를 지향 할 수 있다. 단, 방송의 조건에 대해 정확히 숙지하며 일관성과 간결성의 미덕을 실천해야 구체적이고 타당한 텔레비전 비평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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