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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운 생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3. 2.

  아주 어렸을 적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인형이든 동물이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생활할 것이다라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을 할 줄 모르는 그들은 인간들이 자리를 비웠을 때 활동을 시작한다. 우리와 같이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거나 거실에 모포를 깔고 고스톱을 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상상은 [토이스토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하게되는 보편적인 생각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작품도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다만 화자로 등장하는 고양이는 좀 더 시니컬하게 인간세상을 바라본다.



<저자인 나쓰메 소세키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고양이는 한 교사의 집에 머물며 교사와 그 가족, 친우들의 행동을 보며 인간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하루를 지루하게 살고있는 교사, 허풍쟁이 친우 등등을 보며 인간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을 낙으로 한다. 하지만 이렇듯 시니컬해서 꼴보기 싫을수도 있는 고양이의 행동이나 생각을 작가는 꽤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 자칫 반박하기 쉬울 수 있는 고양이의 생각들을 굉장히 설득력있고 재기발랄한 생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나츠메 소세키라는 작가의 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조차 만약 고양이의 관점을 가진다면 인간들의 세상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도도한 인상이 강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를 통해 약간은 허세있는 고양이를 화자로 선택했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풍자는 꽤 위험한 분야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풍자는 조롱을 밑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조롱 혹은 풍자가 누군가에게는 껄끄럽게 받아들여 질수도 있을 것이고 이러한 풍자가 재치있지 않다면 그저 패설에 가까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게다가 동물을 화자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우리나라나 외국의 전래동화, 우화에서도 발견될 수 있는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자칫 조간신문 4컷만화처럼 가볍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인간 군상의 내면이나 행동을 심도있게 표현하고 있고 설득력있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나츠메 소세키란 작가가 굉장히 관찰력이 있고 인간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해온 사람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책의 풍자는 또한 재미유발의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군상의 내면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가지 관습, 시대상황까지 파고들어 인간들 사이의 갈등, 죽음에 대한 화자의 견해 더 나아가 미래사회에 대한 예측까지 언급한다. 이렇듯 재미유발뿐만 아니라 시대에 대한 통찰력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이 책이 일본이 자랑하는 문학작품으로 평가받을만 하고 능히 세계고전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나츠메 소세키의 초상이 들어간 일본 1000엔권(현재는 교체)>


  스포일러일수 있겠지만 이 책의 마지막에서 고양이가 술취해 독에 빠져 죽을 때는 시인 이태백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이태백은 달을 너무나 사랑하여 술에 취해 연못에 비춰진 달을 보고 뛰어들어 죽음을 맞았다. 이 책의 고양이도 맥주를 먹고 취하여 달님에게 인사하려다 독에 빠져 허우적대다 포기하고 이내 죽음을 맞이한다. 이 책을 같이 읽은 친구들은 이야기의 끝은 결국 죽음이므로 이렇게 끝내는 것이 최선이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모든 이야기의 끝은 있기 때문에 가장 보편적인 끝은 죽음이라는 점에서 공감이 갔다. 이에 더해 죽음의 방식에 대해 고고한 고양이다운 죽음이었다는 점에서 나는 흥미로웠다. 작가가 어떻게 끝을 낼까 고민하다 고고한 이미지에 걸맞는 이태백다운 죽음을 고양이에게 적용하여 다소 오마주적인 결말을 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태백과 고양이가 사랑한 달. 그들은 인간세상에 대해 실망을 하고 그와 대비되는 깨끗한 세계로 달로 가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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