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이 사랑받는 이유
사람들이 다들 미생, 미생~ 할 때 궁금하긴 했지만 딱히 땡기지는 않았어요. 안그래도 '취업'이런 단어 우울한데 굳이 찾아봐서 더 우울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때문이었죠. 그런데 미생열풍에 호기심이 생기신 엄마가 미생 만화책을 주문하셨고, 이왕 이렇게 된거 한번 봐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미생을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곧 저도 미생 열풍에 빠져들게 됐죠.ㅜㅜ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바둑의 세계에 있었던 주인공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한 후 냉혹한 사회 생활을 견뎌내며 성장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을 바둑과 적절히 연결시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회사생활 이야기를 흡입력있게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이 흡입력은 미생의 인기로 이어졌죠. 2012년 웹툰을 시작으로 2014년 tvN 드라마로 막대한 인기를 갖게 된 미생!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포인트는 이렇게 미생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이야기인데 이토록 사랑을 받은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딱 이 키워드때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공감'인데요. 미생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일으키게 하는 작품입니다. 단순히 극 중 캐릭터들처럼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같은 대학생에게도요.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미생입니다. 공감은 주로 '장그래의 독백'을 통해 불러일으켜집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공감됐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저는 만화책만 읽었으므로 만화책 중심으로 살펴볼게요^^)
1권. p. 23 - 27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 기재가 부족하다거나 운이 없어 매번 반집 차 패배를 기록했다는 의견은 사양이다. 바둑과 알바를 겸한 때문도 아니다. 용돈을 못 주는 부모라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자리에 누우셔서가 아니다. 그럼 너무 아프니까. 그래서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으로 나온거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 첫 도입부 부분의 독백이죠. 자신의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와 쓰라린 경험을 해봤다면, 공감을 할 수 있는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봐도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자기 위안은 사실은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죠. 눈물을 흘리며 담담하게 이 대사를 하는 장그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연민이 가고 공감이 갑니다.
6권. p. 137 - 149
취해라.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 쪽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 새 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해라. 그리고 때때로 궁궐의 계단 위에서, 도랑가의 초록색 풀 위에서, 혹은 당신 방의 음울한 고독 가운데서 당신이 깨어나게 되고, 취기가 감소되거나 사라져버리거든, 물어보아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 지나가는 모든 것, 슬퍼하는 모든 것, 달려가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게 지금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취해라」,『파리의 우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민음사, 2008)
: 일년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을 돌아본 장그래의 모습과 함께 '취해라'라는 이 시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 시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전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들이나, 자신이 바쁘게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읽기에 참 좋은 글입니다. 또는 열정적으로 일한 당신이 뒤를 돌아봤을 때 공감할 수 있는 글이기도 하죠. 이 전 에피소드들의 장면들을 다시 보여주면서 이 글이 함께 나올 때 가슴이 창 뭉클하더라구요. 적절한 그림과 적절한 대사, 윤태호 만화작가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9권. p. 140 - 141
일을 한다. 회사에 나왔으니 일을 한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고, 살아갈 수 있고, 잊을 수 있다. 지나고 나면 추억일지라도 지나지 않았으므로 괴로워진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싶을 때, 그것은 이미 추억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의 괴로움으로 족하다. - 「마태복음」6장 34절
: 미생의 마지막 권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 대사 또한 괴로운 일을 겪고 있을 때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될 수 있는 대사입니다. 내일의 괴로움까지 다 받아들이려 하지 말라는 이 말이, 현실적으로는 행하기 힘든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힘이 되더라구요.
이 세상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완벽한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적을 겁니다. 그리고 불확실한 자신에 대해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그 수많은 다수는 누군가가 자신을 위로해주길 마음속 깊숙히 바라고 있었을 겁니다. 바로 그 타이밍에 등장한 작품이 '미생'입니다. 바닥부터 시작하는 장그래의 모습에 공감하고,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위로받고, 미생이라는 작품을 사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잠시후도착의 미생이 사랑받는 이유 포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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