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더 로드(The Road)를 읽고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매카시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일흔을 넘긴 매카시에게는 열 살이 채 안된 아들이 있는데, 몇 년 전 함께 엘파소의 한 호텔에 묵게 되었다.
매카시는 아들이 잠든 사이에, 마을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오십 년이나 백 년 후에는 이 마을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상상에 빠져 들었다고 한다.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이미지는, 산 위에 불길이 치솟고 모든 것들은 다 타버린 회색의 모습이었고 이 후 매카시는 이 이미지를 바탕으로 나중에 아일랜드에서 지낼 때에 이 책을 완성했다.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 옆에서 자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상상을 하다니, ‘그의 늙어가는 육체에 깃든 날이 선 정신이 섬뜩하다’는 옮긴이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로드의 배경이 되는 세계는, 최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재해와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는 드문 것이 아니기에 잿더미로 변한 회색 도시의 모습이 낯선 것은 아니지만 책의 단어를 따라가며 그리게 되는 로드 속 매카시의 세계는 정말이지 황량하다 못해 독하다.
책을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데, 상황이 너무나 처절하다 보니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책 속의 생존자는 파괴 전 세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현실을 버티는 동시에 그 기억도 함께 버텨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살아남았다는 것이 전혀 반갑거나 달갑지 않은 상황인데, 자신도 함께 그 세계와 함께 소멸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억울할 정도이다.
하지만 책장을 끝까지 넘기고 나면 미세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어떤 온기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분명 비관주의에 절여진 책은 아니다. 현실의 얼굴을 너무나도 처절하게 맞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좌절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동시에 그의 매 순간에 경의를 표하게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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