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가 선택한 시각
사진은 선택된 시각이다. 어떠한 개입도 없이 단순히 사실만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제한된 프레임 안에 작가가 담고자 하는 시선과 내러티브가 담는다. 그렇다면 로버트 카파가 선택한 시각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전쟁에 대한 경계’다. 사실 카파전을 가기 전에 전쟁 사진전이라는 말에 ‘온갖 시체들 사진을 보고 오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봐왔던 전쟁 사진에 대한 내 스키마는 ‘노골적이고 잔인한 사진들의 모음’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남북 전쟁 사진 중에 남한의 군인이 북한의 군인의 잘린 머리를 들고 웃으며 찍은 사진이 있다. 그 사진을 보고 나는 토를 할 정도로 끔찍해했다. 그리고 전쟁이 얼마나 잔인한 행위인지 단번에 마음에 와 닿게 됐다. 하지만 카파의 사진들은 그러한 극단적인 잔인한 사진들이 없었다(사전 검열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죽은 자들보다 살아있는 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보고 직접적으로 바로 전쟁에 대한 경계가 생기거나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전쟁이 남긴 아픔에 대해 느껴지기 시작했다. 카파가 렌즈에 담아낸 살아남은 자들의 눈은 공허하고 처참했다. 마치 아직도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듯한 그 표정에서 쓸쓸함, 외로움이 묻어났다. 카파가 담고 싶었던 것도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느끼는 그 허무한 감정일 것이다. 이 감정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무엇으로 인해 이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인지, 같은 인간이 왜 서로를 죽이고 파국으로 몰아넣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 물음을 생각하며 우리는 자연스레 전쟁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된다. 이 경계심이 카파가 프레임에 담고자한 시각이다.
2. 왜 하필 전쟁인가?
생각보다 많은 사진들이 전시 되어있어서 꽤 긴 시간동안 전시관 안에 있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왜 카파는 하필이면 ‘전쟁’이라는 소재에 제일 관심을 가졌던 것인가에 대해서다. 그는 무려 총 5번의 전쟁(스페인내전,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첫 번째 중동전,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했다. 그런데, 폭격이 수시로 일어나는 전쟁 현장 속에서 사진을 찍기로 결시하는 무척 힘든 일일 것이다. 실제로 카파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었고, 그가 죽은 이유도 지뢰를 밟아서였다. 그렇게 위험한 장소에서 왜 그리도 사진 찍기를 고집했을까. 처음에는 일종의 잘난 척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나는 여기도 다녀왔어! 게다가 사진도 이렇게 멋지게 찍고!’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들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겨우 관심을 받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이윽고 들었다. 분명 그가 모든 것을 걸만한 흥밋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추측컨대, 카파가 전쟁에 주목했던 이유는 전쟁이 인간의 밑바닥까지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소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사람간의 갈등이 논쟁과 설득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가장 극단적으로 일어나는 물리적인 형태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런 모습은 마치 동물의 왕국을 연상케 하는데, 동물과 차별된 점이 있다면 인간의 싸움은 더욱 잔인하고 지능적이라는 것이다. 당사자 간의 싸움으로 끝내지 않고 당사자와 연루된 사람들까지 모조리 불행에 빠트리려 한다. 소녀들은 성노예로 전락시키고, 소년들의 손에는 총자루를 쥐어준다. 카파는 이처럼 전쟁의 당사자들이 아닌 당사자들로 인해 끔찍한 상처를 받게 되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주목했다. 그들의 상처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밑바닥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평화롭고 교양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또 다른 이면을 볼 수 있기에 카파는 전쟁에 대해 더 흥미를 느끼고 전달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3.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가 지키려 했던 것
「오마하 해변에 착륙하는 미군 부대 공격 개시일, 노르망디, 프랑스」라는 사진은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중에 찍은 카파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포커스도 맞지 않은 상당히 흔들린 상태의 사진인데 왜 사람들은 최고의 걸작으로 뽑은 걸까? 그건 바로 현장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폭격이 이어지고 모두가 도망가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카파의 손은 떨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총을 맞고 죽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두려움 때문에도 그의 손은 흔들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카파의 작품들을 보면 초점이 흔들린 사진들이 종종 발견된다.
그렇게 초점이 흔들린 작품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카파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공습경보를 듣고 뛰어가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볼 때 더 그랬다. 저 장면은 연출된 장면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그렇다면 카파 자신도 도망가야 하는데, 자리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니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존경스러웠다. 보도 사진가라는 자신의 소명을 죽는다 해도 끝까지 지키려 했던 그의 열정이 느껴져서다. 폭음이 터지는 순간에도 끝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놓치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사람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려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카파는 전쟁의 부당함을 알리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온몸으로 촬영에 임했다. 그의 사진들을 보면서 과연 나도 이렇게 온몸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는지 되물어 보게 됐다. 과연 내가 열정을 다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4. 카파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예를 들면 같은 내용을 가지고 신문의 내용을 전달 할 때, 사진이 함께 실리면 더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장면을 찍은 사진인가에 따라 독자의 시각이 부정적인 시각 또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나눠지기도 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이미지에 민감하고, 영향을 크게 받는다. 같은 맥락으로 카파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컸다. 카파의 사진으로 인해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주목하고, 그 참혹성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리아 내전이 벌어져도 직접 안 느껴지는 까닭은 너무나 먼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문이나 TV뉴스에서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의 모습을 접하게 되면 다른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좀 더 와 닿게 된다. 카파가 찍은 사진이 사람들에게 전달한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는 현장을 찍은 사진이야말로 지구촌의 소식을 가장 현장감 있게 알 수 있게 한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카파의 사진으로 인해 군인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가고 있으며 노인, 여자, 어린이들이 어떤 시련을 겪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전쟁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요인이 됐다. 존 스타인벡은 카파의 사진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주체할 수 없는 연민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 사진작가지만 전쟁을 싫어했고 전쟁을 통해 인간의 밑바닥을 찍었지만 이는 이와 같은 일이 다신 일어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인간에 대해 주목하고,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들을 제시한 카파의 사진들. 이 사진으로 인해 우리는 조금 더 사회 현상에 주목하게 되고 생각할 거리들을 갖게 됐다. 따라서 그는 위대한 사진가라고 불릴만하다.
지금까지 <로버트 카파 사진전> 감상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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