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샤를리인가?
만일, 샤를리라는 상징이 상대방을 극단적으로 배척한 상태에서 얻는 표현의 자유라면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실천 할 때, 개인의 자유마늠 존중해야 하는 것이 타인의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 뿐이라며 상대방의 신념을 무시하고 공공연하게 증오하는 것은 비판을 표방한 비방일 뿐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신의 권리만큼 남의 권리를 존중하는가에 있다. 남의 권리는 고려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며 비판받아 마땅하다. 표현의 자유 허용 범위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샤를리 엡도는 그동안 무슬림들이 모욕을 느낄 정도의 자극적인 만평을 출판해왔다. 만일 무슬림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을 기본으로 한 만평이엇다면 정당한 풍자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증오의 대상이라는 이유로 논리없는 과도한 감정의 표현은 무슬림을 단순히 모욕하는 것에서 그친다. 따라서 샤를리 엡도는 표현의 자유 허용 범위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올해 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을 커뮤니티 상에서 모독했던 일간 베스트 회원들이 모욕죄 선고를 받았다. 그들도 별다른 이유없이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며 희생자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모욕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비판바아 마땅한 모욕적인 행동일뿐 표현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샤를리 엡도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근거없는 비방은 비방에서 멈추고 만다. 타인의 신념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결여된 표현은 또 다른 악순환을 낳게 된다. 요컨대, 타인을 존중하지 않은 채 표현의 자유만 주장하는 '나는 샤를리다.'라는 표현은 경계하고, 숙고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행위는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자신의 의견을 폭력을 통해 주장하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며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타인의 입장을 깡그리 무시한 채 언론을 통해 비방하는 내용을 출판하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잠시후도착의 나는 샤를리인가? 포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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