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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잠시후도착의러브레터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 시각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5.

인형의 집을 뛰쳐나간 ‘노라들’이여
 헨릭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은 중학생이었던 당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자신을 어린 아이들이 갖고 노는 인형처럼 소유하려 했던 남편에게서 벗어나 집을 떠난 노라의 모습을 보며 나도 누군가의 인형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라노도 같은 맥락으로 패션 세계로 뛰어들었다. 노라노는 한국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 유학을 간 신여성이자 한국에서 최초로 패션쇼를 연 패션계 1세대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면 누구나 탐을 낼만한 소재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김성희 감독과 여성주의 미디어공동체 연분홍치마는 다큐멘터리 <노라노>를 만들면서 그녀 개인의 삶에서 한 차원 넘어서서 1950~70년대의 ‘노라들’의 삶을 전반적으로 다루고자했다. 

 


 당시의 한국 여성들이 살던 시대의 사회는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였다.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삼으며 검소하고 남편의 내조를 잘하는 여성을 가장 이성적으로 설정하고 이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여성을 공격했다. 그러자 <인형의 집>의 주인공인 노라처럼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찾아 저항하고 표출하기 시작했다. 노라노는 패션으로 여성의 당당함을 표출했다. 몸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는 옷을 만들고 기성복, 미니스커트, 양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남성에게만 허락했던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이미지’를 패션을 통해 여성에게도 부여한 것이다.
 물론 김성희 감독은 노라노는 오직 ‘고객을 위한 패션’만 생각했기에 현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여성 주의적 멘토는 되지못했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하지만 그녀의 발자취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당대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현대/성/영화 : 성을 둘러싼 전쟁들
 생물학적인 성을 sex라 칭하고 사회적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을 구분할 때는 gender라 칭한다. 그리고 생물학적인 성을 토대로 사회가 부여한 속성이나 성질을 포괄하는 개념을 ‘성차’라고 일컫는다. 즉, 남성은 남성다워야 하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인데, 이것을 문제 삼아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 담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본문은 이러한 페미니즘 담론의 변화와 함께 성장한 페미니즘 영화에 대해 서술하고, 더 나아가 동성애 정치학의 이야기까지 다루려한다.
 페미니즘적 의식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70년대 서구에서 페미니즘 영화가 첫 등장했다. 여기서 페미니즘 영화란, 페미니즘적 의식을 갖고 여성이 주체가 되어 독립적으로 제작한 영화를 말한다. 신 여성영화라고 불렸던 당시 페미니즘 영화는 주로 다큐멘터리 장르의 작품이 많았다. 다큐멘터리는 다수의 대중에게 좀 더 쉬운 방법으로 페미니즘 의식을 전달 할 수 있는 적합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여성의 집단적 투쟁, 수동적인 역할의 여성의 위치 등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소재를 수면 위로 내세우기 시작했고 페미니즘과 관련된 영화제와 영화 비평 및 이론이 등장하게 됐다. 이 때 등장한 페미니즘 영화비평가들의 활동이 대두되면서 페미니즘 영화이론 및 실천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1975년에는 가부장적 무의식을 밝히기 위해 정신분석학과 기호학 등의 방법론을 끌어들이고 기존 주류 영화인 할리우드 남성감독의 영화를 분석했다. 그리고 이 주류영화에 대항하기 위해서 다소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영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클레어 존스톤과 로라 멀비와 같은 영국 페미니즘 영화이론가들은 당시의 영화이론에 대해 두 가지로 정리해 제시했다. 첫째로 할리우드 주류영화에서는 여성을 남성의 수동적 대상으로 그리고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는 ‘빈’기호이며 남성의 쾌락을 위한 성적 대상으로 구축했다는 것이다. 둘째로 성차를 기반으로 봤을 때 남성과는 차별화된 여성 및 여성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바탕으로 페미니즘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식으로 아방가르드 영화를 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잔느 딜망>이라는 작품에선 기존의 주류 영화들이 해왔던 영화 기법을 벗어나서 여성의 경험, 지각, 일상의 리듬, 관계, 몸짓 등을 표현했다. 또한 <딸이 되는 절차>라는 작품에선 어머니라는 대상 또한 남성의식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냐는 획기적인 질문을 통해 지배적인 재현양식에 대해 도전하는 시도를 펼쳤다. 이와 같이 기존에서 벗어난 재현양식 구축의 전제에는 여성은 자신의 언어가 없으며 따라서 문화적으로 지배적인 표현 형식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이 깔려있다. 우리나라의 90년대 작품인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 메멘토 모리>가 이러한 비지배적인 말 걸기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인 효신과 시은은 남들이 쓰지 않는 ‘텔레파시’를 통해 서로 대화한다. 가부장적인 시선이 만연한 학교 내에서 그들만의 언어를 씀으로써 지배적인 말걸기 양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로라 멀비는 주류영화의 쾌락과 동일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즉, 여성이 자신이 주체의 위치가 될 수 없는 주류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즐거움과 쾌락을 느낄 수 있냐는 질문인데 나는 이는 조지 가브너가 주장한 ‘문화계발이론’으로 설명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화계발이론에서 ‘주류화’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은 미디어를 받아들일 때 자기의 기존 입장과 반대되는 메시지라 하더라도 계속적인 반복을 통해 미디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된다. 마찬가지로 항상 수동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영화를 보면서 처음엔 불편함을 느끼고 자신과 동일화를 못시키겠지만 반복되는 수용을 통해 자신과 동일화 시키고 쾌락까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을 정리해봤다. 한편 페미니즘 영화이론가들은 여성관객성에 대해 연구를 통해 여성은 남성보다 양성적이기 때문에 성전환적 동일화가 일어난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여성관객에 대한 논의는 과거 텍스트 작동 방식에 집중했던 연구 사조에서 텍스트와 관객의 관계를 밝히는 연구 사조로 변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모든 이론이 그러하듯 페미니즘 영화 이론의 의제 또한 여러 가지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첫째로 남성과 여성의 젠더에만 편중되게 다루었다는 점, 둘째로 여성의 속성과 본질에만 주목하게 되면 본질주의로 빠지게 될 수 있다는 점, 셋째로 남성과 여성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여성들 간의 차이, 민족, 계급, 성, 나이와 같은 다양한 차이를 간과했다는 점이다. 특히 마지막 비판으로 인해 여성들 간의 차이를 분석하고, 여성들의 의사소통과 연대의 필요성을 중시하게 되는 새로운 주장이 펼쳐지게 됐다. 요컨대, 70년대에 수립된 페미니즘을 깨뜨리고 새로운 페미니즘 영화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또한 더불어 페미니즘의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 조성을 간구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을 통해 동성애 정치학 및 퀴어 이론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게 됐다. 페미니즘이 기존의 억압된 구조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처럼 성 정치학 또한 이성애를 벗어난 여타의 성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려는 학문이다. 동성애 정치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를 규명하고 이 관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80년대의 운동으로 표출했다. 더 나아가 90년대에 등장한 퀴어 정치학까지 함께 묶어서 봤을 때, 영화 시장의 상황은 이성애 중심의 작품과 제작으로 가득 차 있다. 스크린에서 동성애는 부정적이고 공포를 주는 소재로 재현된다. 앞서 예로 들었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 메멘토 모리>에서 또한 레즈비언인 효신을 귀신으로 그려냄으로써 동성애와 공포를 연관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런 제도를 대항하기 위해 퀴어 영화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때 퀴어 영화를 만들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본문에서도 계속해서 제시했듯이 성적주체를 어떻게 그려내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한국의 퀴어 영화 대부분은 게이를 가볍고 희화적인 캐릭터로 그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아무리 이성애 영화와 견줄만한 동성애 영화의 시장이 커진다 하더라도 관객에게 퀴어에 대한 편견을 심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신중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성애 캐릭터의 유형이 여러 가지가 있듯이 퀴어 캐릭터 또한 다양한 유형으로 그려내야 진정한 퀴어 영화의 발전이라고 본다.  

 

 

페미니즘과 대중문화
 남성과 여성의 성차와 역할 연결은 근대 이전에는 보편적인 성격을 띠지 않았다. 각 사회에 따라 고유한 방식이 있었고 다양하게 성차를 유지하고 재생산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면서 여성에 대한 억압을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 억압에 대해 점차 이론화되고 체계화된 도전이 등장하게 됐다.
 ‘페미니즘의 첫 번째 물결’이라고도 일컫는 첫 번째로 체계화된 형태로 나타난 도전은 여성 참정권을 요청하는 운동이었다. 남성에게만 허락했던 정치적 권리를 여성에게도 부여해야 한다는 운동인데, 이 운동은 지식인, 백인, 중산층 이상의 여성에만 국한됐기 때문에 여성 내부안 에서도 차별이 일어난다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정치적인 운동에만 한정됐기 때문에 문화의 범주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1960년대 ‘2차 페미니즘 물결’이 일어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와의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한다. 단순히 정치 영역을 넘어서서 사회, 문화, 여성의 몸, 직장, 육아, 성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 재현에 대한 담론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성 억압의 주요 원인이 한정된 재현이라 판단을 하고 여성적 공간의 확보와 여성적 읽기와 쓰기를 대두시킴으로써 투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와 동시에 미디어가 여성을 억압하는 원동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통찰하고 올바른 미디어를 위한 운동을 펼치게 됐다. 이 같은 배경으로 페미니즘 운동에서 이미지, 문화, 대중문화의 역할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또한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문화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분야와 같은 연구 영역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됐다. 즉, 페미니즘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정교해지게 된 것이다. ‘페미니즘의 3차 물결’인 현재는 남성 중심적 문제 설정에 균열을 내기 위해 여러 영역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분류된 네 가지 영역이 급진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다. 각 영역에 따라 여성 억압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시각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점이 있다. 첫째는 현대 사회에 성차에 따른 억압 구조가 여전히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여성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억압이 지속적으로 반복 재생산돼서 무의식적 차원까지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셋째는 따라서 대안적인 문화 생산 장치를 마련하고 새로운 페미니스트 주체를 생산해야한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넷째는 같은 맥락으로 일상적 삶의 방식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적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문화적 장치’, 특히 ‘대중문화’ 영역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960년에서 1970년대에 걸쳐 미국과 영국에선 대중문화 속 성차별에 대해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즉 대중문화에서 여성을 남성의 성적인 대상으로 묘사하고 열등한 존재로 그림으로써 잘못된 인식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내러티브, 카메라 동작, 조명, 남성의 응시(gaze) 등의 방식을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면서 여성만의 시선을 갖도록 하는 작업이 시작됐는데, 특히 멜로드라마 장르가 그러했다. 그리고 더 이상 성적 욕구를 숨기고 남성에게 성적 기쁨을 주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성욕을 그대로 표출하는 여성의 모습이 그린 작품들이 탄생하게 됐다. 우리나라 1998년 작품인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작품에선 여성들이 성적인 농담이나 섹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이 작품은 기존 스크린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말하길 꺼려하고 함구한 소재를 당당히 드러내기 시작한 영화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페미니즘 영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페미니스트적 분석은 복합적인 배경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여성의 범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서양과 동양의 관계, 제3세계와 또 다른 제 3세계 국가의 관계, 야만과 문명의 관계 등에서 여전히 여성과 남성의 권력관계를 접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 문제에 대한 담론은 다양한 방식과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잠시후도착의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 페미니즘의 방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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