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미사일 위기는 세계 3차 대전의 발발 원인이 될 수도 있었던, 매우 위험했던 사건 중에 하나이다. 사건의 배경은 냉전으로, 직접적이고 표면적인 무력 갈등은 없었으나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미국과 공산주의로 대표되는 소련이 정치적으로, 또한 외교적으로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시대이다.
미국에 인접한 쿠바는 1898년 미국과 스페인전쟁에서 미국이 이긴 이후 그 영향권에 들어와 미국의 반(半)식민지가 됐다 이 후 미국인에 의한 오랜 경제적 착취는 혁명의 씨를 뿌려 결국 1959년 민족주의자인 피델카 스트로가 혁명을 통해 집권했다. 이후 카 스트로는 계속해서 미국과 갈등을 빚었고, 그는 소련에 접근하여 동맹관계를맺고 1962년 이후로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공급받기 시작했다. 이에 격분한 미국 대통령인 케네디는 9월 11일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첫째, 그때까지 쿠바에는 “공격용무기”, 즉 핵미사일이 반입되지 않았음을 확언했다. 둘째, 동 시에 소련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할 경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그 경고는 너무 늦은 것이였다. 그 해 5월 이미 소련은 쿠바에핵 미사일을 공급하기로 결정했고 경고가 나간 9월9에는 이미 상당한 정도 진척되고 있었던 것이다. 위기의 시작은 10월 15일 미국의 U-2 고U공정찰기가 쿠바 상공을 비행하면서 촬영한 사진에 MRBM 및 사정거리가 그 두배인 IRBM 과 그 기지가 확인되면서였다. 그것이 백악관에 보고된 10월 16일부터 소련이 철수 의사를 밝힌 10월28일2까지 13일간은 냉전 사상 가장 첨예하고 위험한 대치 상황이었다. 핵 미사일을 어떻게든 제거해야만 했다.
미국은 소련에 철수를 요구하되 그 요구에 불응할 경우 군사적 대응을 협박하는 해상 봉쇄가 대안으로 결정되고 시행됐다. 미사일을 실은 소련선박이 접근하면 미 해군이 정선 및 검색 나포를 시도하여 양국사이에 대결국면이 전개 될수있는 상황이 전개 됐다. 10월26일 미국은 소련에게 48시간안에 소련이 미사일을 철수하지 않을 경우 공습과 뒤를 이은 지상군의 침공으로 미사일을 강제로 제거하겠다고 통보했다. 다행히 소련은 미사일을 철수하겠다고 선언했고 다행히도, 3차 세계 대전은 발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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